진짜 진짜 배고파요!
2016년 1월 24일 신도림 에듀플렉스 임세진 원장의 일기
한 끼 식사도 나눠주고픈 매니저들
정신 없이 아이들의 학습상황을 점검하다가 이제 겨우 한 숟가락을 들려는데 왠지 뒷통수가 따갑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기가 주저된다. 그렇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가 없다.너무나 강렬한 시선들이 느껴져서 결국 “왜? 무슨 일이 있니?”라고 말하며 무심히 원장실 밖으로 눈길을 보내게 된다. 윽. 역시 몇 몇의 아이들이 원장실 통유리 앞에 줄을 서서 허겁지겁 저녁식사를 시작하는 나와 매니저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 손에는 셀프리더(에듀에서 쓰는 하루 학습계획 다이어리)를 들고 있기도 하고 각자 공부하던 교재가 들려있기도 하지만 질문이 있어서 매니저들을 급하게 찾는 것은 아니다. “매니저님, 저 이것을 잘 모르겠어요.”, “이 다음에 어떤 방식으로 할지 몰라서요.”라고 말은 하지만 언제나 그 눈빛은 매니저에게 머물러있지 않고 우리의 저녁식사로 향해 있기 때문이다. 문득 본인들도 모르게 진심을 입 밖으로 말하기도 한다. “아, 맛있겠다.”와 같은…
만화영화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 눈을 하고 이런 말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 매니저들은 안쓰러운 마음에 첫 술 한 번 떠보지도 못하고 어미새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듯 자신의 밥을 나누어 아이들에게 한 숟가락씩 나누어 먹이고 정작 본인들은 한 수저도 제대로 못 뜨고 만다. 처음엔 저녁식사 시간에 밥 냄새를 풍기며 식사를 하는게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저 아이들이 예쁜 마음에 한동안은 그저 그런 상황을 지켜보고 나 역시 함께 나누어주곤 했었다. 그렇지만 원장의 입장에서는 매니저들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하루 한 끼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것이 부지기수라, 늘 이렇게 하다가는 결국 아이들에게 매니저가 긍정의 에너지를 전달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근심이 커졌다.
그래서 한 번은 매니저들에게 당 떨어질 때마다 혹은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 할 때 먹으라고 간식을 챙겨주었다. 그런데 병아리 눈물만큼도 먹기 힘들어하던 매니저들이 간식은 하루가 멀다하고 금방 사라져갔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의아한 마음에 “매니저님들, 간식이라도 정말 잘 챙겨드시는거죠?”라고 물었더니, 다들 주저하며 “사실 원장님,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해서 조금씩 나누어 주었어요. 괜찮죠?”라고 답을 한다. 한참 성장기라 저녁식사 직후에 우리가 식사를 할 때도 배고프고, 조금 앉아서 공부를 하고 난 다음에도 배고프고, 상담을 하고 난 다음에도 배고프고… 아이들의 배고프다는 말이 하루에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공부하기 힘들어요.”보다는 “원장님, 배고파요.”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하는 듯 했다. 그렇다고 한참 커가는 아이들에게 매니저들의 식사와 간식이 성에 찰리도 없고 매일 감당하기도 어려워 난감하기만 했다.
매니저를 배려하는 배고픈 학생들
그러던 어느 날. 한 매니저가 학부모님 상담까지 겹쳐서 뒤늦게 혼자 김밥 몇 조각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날도 배고픔에 못 이겨 아이들이 그 김밥마저 먹고 싶다고 했었던 모양이다. 그날따라 너무나 많은 대화를 나누고 학습코칭이 있었던 매니저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 없었지만 아이들 눈에는 오로지 김밥만 들어왔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참기름 냄새 폴폴 풍겨내는 김밥의 풍미가 아이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을테니까. 매니저가 떨리는 손으로 김밥 하나를 집어 아이들 입에 넣어주려 순간, 한 아이가 불쑥 가로막았단다.
“얘들아, 매니저님도 드셔야지. 우리는 저녁 먹고 왔잖아. 그리고, 매니저님! 이렇게 자꾸 주지 마세요. 저녁식사인데 저희 자꾸 주시면 건강 헤쳐요. 건강해야 우리랑 오래도록 같이 하죠. 절대 절대 아이들에게 김밥 나눠주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이 말을 듣고 김밥 한 조각을 탐하던 아이들은 겸연쩍어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는데, 다들 무언가 생각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진심은 통한다 했던가? 그 뒤로 아이들의 눈빛은 여전히 배고픔에 힘들어 하는 것은 여전했지만, 매니저들의 식사만큼은 탐하지 않게 되었다. 무쇠도 소화시킬 수 있을 폭풍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식욕도 누를 수 있는 배려와 사랑이 움튼 것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정신적 성장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들은 나와 매니저들을 보고 늘 배고프다고 한다. 부모님께서 매니저들과 나누어 먹으라 가져오신 간식들도 이 녀석들에게 대번에 털리기도 하고, 가끔 매니저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간식을 사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공부가 힘들다 투덜대고, 학교가 가기 싫다 짜증을 내다가도 이렇게 달달한 무언가를 먹고 나면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학습에 도전한다. 이런 아이들의 마음이 보여 “배고파요, 배고파요” 하는 것들이 내 눈에는 그저 예쁘게 지저귀는 것으로만 보인다. 아이들의 배고픔이 자신의 미래 가능성에 도전을 하고,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기재로 작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학부모님께서 아이들 응원 차 보내주시는 간식들]
전지전능한 치느님
한 번은 2주 동안 중학 3개년 수학과 영어를 가장 먼저 복습한 친구에게는 치킨 한 상자를 사주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십여 명의 중3 학생들이 다른 학년에 비해 기말고사를 이르게 보고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방황하게 될까 우려되어 2주 학습 이벤트로 내걸었는데 사실 반신반의 했었다. 아, 그런데 이 ‘치느님(치킨+하느님의 합성어)의 은혜’는 어디까지였을까? 상당히 벅차고 빡빡한 학습량이었는데, 저마다 새벽까지 밤을 지새우며 서로가 1등으로 먼저 해내겠다며 덩치도 산만한 녀석들이 매일 학습완료 쿠폰도장을 모으기에 혈안이 되었다. 따끈따끈한 치킨 한 상자를 손에 거머쥐고 집에서 혼자 다 먹는 것이 목표라며 정말 많은 아이들이 끝까지 열을 올렸다. 치킨 한 상자에 이리도 열심인가 싶어서 웃음도 터져 나왔지만 끝까지 도전에 임하는 자세가 너무 기특하기도 했다. 결국 여자 아이 하나가 1등을 해서 손에 치킨을 들고 즐겁게 집으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뿐이랴. 뒤늦게 대학을 가보겠노라며 공부를 시작한 고3 학생에게도 학습량을 전부 완성해서 오면 다음 날 토요일 점심 때 탕수육을 사주겠노라 한 적도 있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지라 한 자리에 앉아서 학습하기도 힘든 아이였고 공부시간 보다 친구들과의 우정이 더 중요해 토요일에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을 아이에게 탕수육은 정말 미미한 도전 목표라고 생각했었다.
역시나 다음 날 약속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아서 마음을 내려놓고 잘 달래볼 요량으로 전화를 했다. 한껏 잠에 푹 절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아이는 어찌되었건 에듀로 등원해서 나를 만난 후에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정확히 한 시간 후에 정말 아이가 한아름 싸가지고 갔던 교재를 쇼핑백에 담아서 들고 왔다. 가방도 아니고 쇼핑백이라 그냥 들고 갔다가 다시 들고 온 것이려니 했었다. 그런데, 교재를 펼쳐보니 밤새 고민하며 공부한 흔적이 역력했다. 깜짝 놀래서 “야, 너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라고 물으니 이 녀석이 씩 웃기만 했다.
아침 7시까지 밤을 지새워도 다 못 끝내서 끙끙거리는데 엄마가 아침에 공부하는 자신을 보고 놀라시며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라고 하는 통에 3시간쯤 자고 나와서 약속 시간에 늦었던 것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약속은 약속이니 자신이 여기서 나머지 학습을 다 하면 탕수육 말고 다른 동생들과도 나누어 먹을 수 있게 치킨 두 마리로 사달란다. 그러고는 제 자리에 앉아서 끝까지 학습량을 완성하고 나왔다.
나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치킨 두 마리를 사다가 토요일에 끝까지 남아서 공부하고 있던 다른 아이들과 조촐한 파티를 했다. 너희 앞에 있는 이 선배가 너희들에게 쏘는 치킨이라고 말하며…
관심과 애정이 고픈 아이들
진짜 진짜 배고프다고 말하는 아이들. 늘 먹을 것이 고프다고 표현하지만, 매니저님들의 사랑과 관심을 놓고 서로 경쟁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우리 아이들이 고픈 것이 주린 배인 것인지, 아니면 한 젓가락이 전달하는 세심한 마음과 따뜻한 관심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매니저들의 하루 한 끼 식사마저 탐할 때는 밉기도 하더니만, 어느 새 이렇게 커서 사랑을 나누어주나 싶을 정도로 아이들의 마음과 배고픔에 대한 추억이 그 어떤 먹거리보다 달달하게만 느껴진다.